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디자인
02) 사람을 살리는 디자인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디자인
디자인은 언제나 ‘더 낫게 할 수 없을까’라는 고민에서부터 출발한다. 패러다임이 변하고 주체와 대상이 바뀌더라도 ‘어떤 목적, 문제해결을 위한 디자인’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디자인은 하나의 독립된 직업이자 전문 분야로 각광을 받아 왔다. 그리고 디자인은 물리적 제품, 기술, 서비스를 소비자와 연결시켜 주는 관계성 측면에서 가치를 창출해 왔다. 하지만 '만드는' 것에 치중했던 것이 과거의 디자인이었다면, 최근의 디자인은 무엇인가를 살리고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에 대해 고민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는 디자인이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발생하고 있는 다양한 사회문제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사실 사회제도나 구조의 모순으로 발생하는 부의 편중화, 실업문제, 주택문제, 인구문제, 환경문제 등은 비단 오늘 내일의 문제가 아닌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던 이슈였다. 그럼에도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으로 '문제의 접근과 해결방식'을 통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대안’을 근본으로 하는 디자인의 역할론에 대한 성찰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은 우리 모두가 다시 한번 '디자인'을 돌이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디자인의 본질은 사용성과 심미적 관점에서의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담는다. 안전의 욕구는 인간이 가진 본능적 욕구로 곧 이 또한 디자인을 구성하고 있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안전에 관한 인식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가 될 때 우리는 이러한 의식에 대한 태도를 흥미와 관심, 적극적 참여로 연결시킬 수 있다. 능동적인 태도와 관점에서 출발하는 새로운 안전을 위한 방법론, 그 답은 ‘디자인’에 있다.
에디터 ㅣ 김미주 (mjkim@jungle.co.kr)
우리 곁은 떠났지만, 여전히 세계 디자인계의 구루로 꼽히는 빅터 파파넥(Victor Papanek)은 ‘모든 사람은 디자이너고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은 디자인이며, 모든 인간 활동의 기본이 디자인’이라 이야기했다. 디자이너로서 디자인을 한다는 것은 사회에 속한 자기애를 가진 인간으로서의 활동을 보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본질적으로 디자인은 의미 있는 질서를 만들어 내려는 의식적이고 직관적인 노력이다. 현재 삶 속에서 우리 각자는 이러한 노력들을 어디에서, 어떻게 발견하고 실천하고 있을까, 우리의 안전에 대한 인식은 어디에서부터 출발해야 할까.
직관적인, 그래서 안전한
길을 건널 때 우리는 일상처럼 보행 신호를 준수한다. 이는 도로를 사용하는 보행자와 운전자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다. 어린 시절을 상기시켜보면 우리는 걸음마를 떼자마자, 항상 ‘조심하라’는 말을 숱하게 들어왔고 학습 받아 온 그대로 빨간색은 ‘건너면 안돼’, 녹색은 ‘안전하니 움직여도 좋다’라는 질서를 위해 정립된 신호체계를 지켜야 했다. 이것은 사회적인 약속 안에서 그 의미를 갖는 것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부터 빨간색은 ‘멈추시오’, 녹색은 ‘건너시오’, 노란색은 ‘안전함’의 상징 컬러가 된 것일까?
도로를 사용함에 있어 안전성과 보행자 보호는 전 세계에 있어 중요한 이슈이며, 한국도 다르지 않다. 수십 년의 고속도로 규제와 도로교통법에도 불구하고 어린이에게 발생하는 안전사고의 약 40%가 교통사고로 인한 것이라고 하니, 이에 대한 해결책 마련은 반드시 필요하다. 지난해 아시아디자인 어워드에서 대상을 수상한 옐로카펫은 디자인 결과의 성취보다는 도로와 안전 그리고 어린이에 대한 관찰을 통한 직관이 결과에 반영된 프로젝트로 볼 수 있다.
외형은 굉장히 간단하다. 횡단보도 근처에 커다란 노란색의 구역을 만들어 아이들을 그 구역으로 인도하고, 운전자가 그들을 잘 볼 수 있게 도와준다. 옐로카펫은 주변 지형과 확연히 시각적으로 구분된다. 밤에는 보행자가 그 구역에 다가가면 적외선 태양광램프를 통해 빛이 나도록 설계됐다.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간단하지만 강력한 옐로카펫은 어린이 안전사고와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디자인의 능력을 보여주는 사례다.
해결하는, 앞장서는 디자인
자연재해는 예측이 어렵다. 그래서 더욱 준비가 철저해야 한다. 재난 구조대가 오기까지 스스로 버텨야 한다면 어떨까?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고 이를 대비해 무얼 준비해야 할까. 자연재해는 미리 대처하기 위해 준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전 세계적으로 자연재해로 인한 사상, 사망자 수는 증가하고 있다. 비단 자연재해뿐 아니라 인재로 인한 피해 또한 자연재해에 비할 바가 아니다.
생존을 위한 디자인 재해 후에 복구를 위한 디자인. 이에 일본의 재난방지 디자인연구회(http://add.or.jp)는 누구나 알 수 있는 재난방지 정보 커뮤니케이션을 목표로 재난방지에 사용할 수 있는 픽토그램을 개발·표준화 한다는 취지아래 재난방지 연구가와 디자이너가 협업해 재난방지 픽토그램 연구회를 발족했다. 실제 재난방지를 위한 픽토그램 개발뿐만 아니라 피난 유도 표식 시스템, 재난 방지맵 등의 연구개발과 이와 관련한 웹 사이트를 개설하며 다양한 재난방지 디자인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며 행정기관과 연구기관, 교육기관 등에 이를 제안한 바 있다.
재난을 위한 온라인 플랫폼도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재난 후를 극복하는 실천하는 디자인을 위한 방법이다. 올리브 프로젝트는 지진이나 쓰나미와 같은 자연재해 시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도록 정보 플랫폼 (http://www.olive-for.us)을 선보인다.
민간에서 운영하는 플랫폼은 글을 작성하는데 제한이 없고, 누구나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는 것이 특징. 본인 확인과 더불어 실용적인 아이디어 인지 확인된 정보나 검증된 정보에 한해 디자인 아이디어를 공유한다. 신문지를 이용한 방한대책, 알루미늄 캔으로 랜턴 만드는 법, 샐러드 오일로 켜는 램프, 긴 바지로 배낭 만드는 법 등 재난 앞에 속수무책, 눈앞이 캄캄한 사람을 위한 생활 정보를 공유하고 얻는다.
디자인 스튜디오 써니아일랜드(대표 심준우)의 안전 디자인연구소 오세이프(OSAFE)는 안전매거진 ‘오래 살고 볼 일이다’를 오는 3월 창간할 예정이다. 국내에 일어난 대형사고들 이후 안전에 대한 경각심과 관심이 대폭 증가한 것에 비해 일상 속 안전에 대한 의식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실천을 위한 안전에 고심한 이들은 지속적인 안전프로젝트 매뉴얼을 제작하고 배포하면서 안전에 대한 리포지셔닝을 위해 새로운 시각 디자인 커뮤니케이션을 제안하며 창간을 알렸다. 친근한 메시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는 안전을 위한 콘텐츠는 통합안전미디어의 필요성, 가치 있는 디자인에 대한 고민으로 연결된다.
책임 앞에 바로 서는 디자인
일본에는 유독 재해로 집을 잃을 사람들을 위한 디자인의 공유가치를 보여주는 사례가 많다. 시게루 반(Shigeru Ban)과 이토 도요는 거장으로 꼽히는 건축가이기도 하지만, 그들에게 공통분모가 있다면 바로, 건축가로서 관념적인 가치에 대한 논의보다 재해 난민에게 실질적인 도움, 생존을 위한 솔루션으로 디자인을 택했고, 이를 실행했다는 점이다.
사람을 살리는 건축가, 재난 건축가로 불리는 반 시게루는 지난 1994년 르완다 인종 대학살 때 종이 튜브를 이용한 재해난민 수용소를 전한 건축가. 94년이후 현재까지는 그는 세계 곳곳의 재난 지역에 ‘종이’를 사용해 생존을 위한 거주공간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지난해 11월 헤럴드디자인포럼의 연사로 내한했던 반 시게루는 자신의 종이건축에 대해 “그 누구도 종이를 건축의 재료로 사용하지 않아 새로운 시도였지만, 종이가 건축의 소재로서 안전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인지 검증 받고 테스트하는 것보다, 사람들의 인식을 개선하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며 건축은 뼈대를 무엇으로 만들 것인가 보다 무엇을 벽 사이에 채워 넣을 것인지가 단연에 더 중요한 요소”라고 전했다.
그는 현지의 상황과 맥락을 고려해 솔루션을 전하는 것이 자신의 건축철학이며 디자인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자신만의 디자인이라 전하며 멋있는 건축물 보다는 문제가 있을 때 ‘디자인을 통해 어떻게 기능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이토 도요는 반복되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거부하고 항상 새로운 시도와 시대적 간극을 디자인에 담아낸 건축가다. 그의 건축은 초기에 독특하고 우아함을 기반으로 디자인의 미적 가능성에 대한 실험을 전개했으나 ‘센다이 미디어 프로젝트’ 이후로 디자인의 사회적 책임과 공공건축에 대한 고민으로 집중되기 시작했다.
공동체, 시민에게 접근하기 위한 건축의 역할에 대한 고민과 시행착오는 그를 시민에게 활용도 높은 건축물과 상호작용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져왔다. 개별 건축가의 위치에서 자신의 세계를 추구했던 그가 사회적 요구로부터의 부응을 상기시키게 되는 순간부터 그의 디자인은 이제 공공의 영역에 있어 거장으로 불리고 있다.
열린 공간이 주는 소통의 가능성과 이에 대한 관대함을 갖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목소리를 내는 이토 도요는 근대 건축이 갖고 있는 스타일에 관한 고정된 사고방식보다 사람을 위한 건축, 이것이 갖는 사회적 역할에 대해 고민을 반복한다. 그의 ‘모두의 집(Home for all)’, 반 시게루의 종이 건축 프로젝트를 같은 거장들의 움직임을 통해 우리는 사람을 살릴 디자인 그리고 생명을 잇게 할 디자인이 무엇인지, 디자인의 본질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봐야 할 때다.
[내용 출처]
"디자인 정글" (http://jungle.co.kr)
[링크] http://magazine.jungle.co.kr/cat_magazine_special/special_temp5_2.asp?idx_caller=2644&idx=2947&idx_special=218&ref=736&page=1&main_idx=2945&main_menu_idx=1&sub_menu_idx=21&menu_idx=301&all_fl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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